Memoir

섬진강기행

spiritus libertatis 2010. 10. 22. 14:57
5월 초,
봄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땡볓이 내리쬐던날 광합성을 하자고 나선 길이 섬진강이었다. 
아침일찍 버스를 타고 임실 강진으로 향했다. 강진에서 버스를 타고 그 유명한 덕치초등학교에서 내리서 강을 따라 걸으면 섬진강의 가장 깊은 속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 덕치초등학교는 김용택 선생님이 계신곳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고 있는데, 나는 김용택 선생님과는 인연이 없지만,  산행을 할때 회문산 자락을 돌아 내려오면 덕치초등학교이고, 7~8년 전에 이곳에서 가까운 근처에서 근무한 적이 있어서 수없이 지나다니던 길이기 때문에 상당히 인연이 깊다. 회문산은 한국전쟁때 남부군 훈련소가 있는 것으로 유명하고, 리영희 교수님이  한국전때 죽을 고비를 넘긴 곳이기도 하다.  또한 산의 모습이 두팔로 감싸안은듯 해서 손꼽히는 명당으로 여겨지는데 양의 기운이 강하다고 한다. 그리고 산중턱의 바위에 세겨진 주역의 명문때문에 주역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지로 여겨진다.  이 회문산 자락의 덕치초등학교 앞에는 섬진강이 흐르고 상류쪽으로 올라가면 섬진강땜이 있어서 풍경이 아주 빼어난 곳이다. 예전 차를 타고풍경만 봐도 머리에 시가 수십편씩 떠오르던 곳이언는데 그저 마음뿐, 시 한편도 건지지 못했었다.   
 

섬진강.jpg


오래전에 시집을 들고 싸인을 받으로 섬진강 시인이 근무했던 마암분교에 찾아 갔을때 분교앞에 즐비했던 '아방궁', '로라의 성' '그녀의 방' 등등의 휘영 찬란한 모텔들의 위용에 입이 딱 벌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김용택 시인의 시나 산문속의 순수했던 아이들이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생각에 많이 실망했었다. 혹자들에게는 아름다운 곳일지는 모르지만, 그저 욕망에 물든 추악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옥정호와 섬진강은 여전히 아름답다. 
 

섬진강2.jpg

 

그것은 옥정호나 섬진강의  깊은 곳은 아직 아직 인적이 드물기 때문이다. 마암분교 뒤를 지나 섬진강땜으로 가는 길이나, 섬진강을 따라 회문산 가는길은 나에게는 눈물 나도록 아름다운 길이고,아무리 시적 감각이 없는 사람이라도 시상이 떠오를 것이다.  예전에 수십번씩 지나면서 봐왔던 길이지만 매번 그림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정말 그림같은곳...
 

섬진강3.jpg

 

그러나, 그때 나는 그림을 볼 줄도, 느낄 줄도 몰랐다. 말 그대로 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하면서 먼산 바라보듯 했고, 밥벌이에 종사하느라 제대로 감상도 하지 못했다. '언젠간 이 아름다움을 모두 섭렵하리라' 하는 다짐이  그곳을 떠나서  7,8년 째 계속되다 결심한게 섬진강을 따라 걷는 것이다. 자연이나 풍경을 감상하거나 느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걷는 것이다. 걷는것은 사색이나 명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좋아 하는 일이고 시간이나 원근에 따라 변하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재미있다. 
 
섬진강4-1.jpg

그리고 걷는데는 돈도 안들고, 운동도 되기 때문에 나는 걷는다. 그것도 변태적으로...
보통 걷기 시작하면 서너시간 이상을 걷는데, 나와 같이 걸어본 이들은 '변태적으로 걷는다'고 동행을 피한다.  주말에 같이 소풍가자고 하면 온갖 핑계를 대며 피하다가 아쉽다며 다음에 같이 하자 하면 상당히 고마워 하는데, 왜 고마워 하는지 미스테리다.  그래서 이번에도 동행이 없다.  그래서 나는 더 변태가 되어간다. 
 
섬진강5.jpg
 
걷는데 있어서 가장 힘든 일은 말벗이 없어서 침묵 수행을 하는 것이다.  이 섬진강을 걷는 처음 2시간 동안 차 3대 지나가는 것 외에는 한사람도 보지 못했다.  내 기억속에 이때쯤이 다슬기 채취시즌이라서 많은 사람들이 강가에 있을줄 알았는데 거의 사람을 보지 못했는데 3시간째 접어 들어서 할머니 한 분 만나서 얼마나 반가웠던지 한시간 동안 호구조사는 물론이고 서울로 올라간 과년한 손녀가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냈는데 갈길이 아직 멀다고 아쉽게 헤어졌다.  손녀가가 서울만 안갔어도  하루 신세를 졌을 터인데, 내내 아쉽기만 하다. 

섬진강6.jpg

섬진강7.jpg
섬진강을 따라서 갈담(강진), 천담, 구담 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천담은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배경이다. 영화는 보지 못했는데, 이곳의 풍경을 보면 그 영화가 얼마나 서정적이고 아름다울까 상상이 된다.  마치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봤던  장면이 생각난다. 가뭄때문에 물만 흐리지 않았다면 여기에서 '흐르는 강물'을 찍었다고 우겨도 될것 같다.

섬진강8.jpg


담(潭)이라는 말은 한글로 하면 '둠벙'인데, 당장 둠벙에 뛰어 들고 싶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내 친구였던 '둠벙지기' 가 생각났다.  한때 블럭질에 심취해 있던 그이에게 '둠벙은 언제지키고 블럭질이냐'했었는데 얼마후 둠벙을 떠나버렸다. 둠벙 지키고 있는 사람한테,  둠벙을 잘 지키라니...
둠벙을 볼때마다 가슴이 뜨끔하다.  

섬진강9.jpg
나는 옥정호의 물이 섬진강땜을 지나 회문산을 휘돌고 천담, 구담, 적벽을 통해 흐르는 섬진강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걸었던 70리의 섬진강 풍경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섬진강이 아름다운것은 이것 때문이 아니다. 
그 아름다움은 세벽 4시면 잠을 깨우는 경운기 소리가 있었고, 또약볓에 담배잎을 따며 벌크소주를 마시며 한잔 권하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념이 뭔지도 모르면서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이웃과 친구를 등진 슬품과 몇일 사이로 마을마다 혼불이 출몰하는 슬픔이 있었고, 용서와 화해를 못하는 것에 대한 미움, 그리고 치열한 삶이 있기 때문이다.  2009/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