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oir
압록강은 흐른다
spiritus libertatis
2010. 12. 6. 22:50
나는 먹물이 무엇인지도 알기도 전에 창백한 먹물이 되지 않으리라 결심했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내 머리속이 시커멓게
물들기 시작하면서 깨닫았다. 그 먹물이 아무런 소리도 자취도 없이 내 몸을 물들이기 시작하면 “나는 먹물이 싫어요!” 라는
심정으로 놀라서 도망가기 일수 였다.
근주자적 근묵자흑(近朱自赤 近墨者黑)....
친구는 잘 사귀고 볼일이다. 한 십여년전에 전혜린 따라하기에 심취했던 감수성이 강한 어떤이가 ‘책좀 보냐?’면서 소개해 준 책이 ‘압록강은 흐른다’이다. “당연하지” 물론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고 강이니까 당연히 흐른다고 대답한것 같은데, 밥은 굶어도 책은 꼭 사서 잃으란다. 안그래도 가끔은 점심은 건너뛰고 살았는데 굶고 책 사읽으라니.... 나에겐 이중고이고 정말로 굶어가며 책을 사 읽을 때까지 그를 원망했다.
'압록강'을 사서 읽었을 때, 정말 숨이 멎는 듯 했다. 간결한 문체에 서정적인 아름다움… 눈앞에 바짝이 다가와 펼쳐지는 그 풍경, 눈물이 났다. 어찌 단순한 서술체로 이렇게 아름다움을 묘사할 수 있을까. 굶은 보람도 있고 그리고 또 몇 일 밥을 안먹어도 살 것 같았다. 그래서 십여년 동안 가끔 배고플 때 잃는 책이 되었다. 물론 주인공의 모습은 소심하고 우울한 전형적인 창백한 먹물이다. 그 먹물은 내가 지극히 싫어 하는 것이었는데 어쩌면 이 책속에 녹아있는 먹물이 나를 물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엇비슷한 소설속의 인물은 나에게 그만큼 커다란 영향을 주웠을 지도 모른다.
압록강은 3.1 운동이후에 독일로 망명한 이미륵에 의해 독일어로 쓰여진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1946년에 쓰여진 이 책은 출간 되었을 때 독일어로 쓰여진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책이라고 호평을 받았고 독일의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 되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엔 10여년이 지난 후에 전혜린에 의해서 소개 되었다. 물론 나도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10년 전에 알게 되긴 했지만 아직도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얼마전 서점에서 한 아이가 이미륵에 대해서 말하길래, 이미륵이 누군지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압록강은 흐른다'와 '무던이'의 작가란다. 그래서 압록강을 잃어보았느냐 하자 교과서에 나온다고 한다. 조금 늦긴 했지만 이런책이 소개되어 아이들에게 잃힌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고 아름다운 마음을 갖는데 큰 도움이 될것이다. 요즘같이 베스트셀러에 가려 좋은책 고르기가 힘든 세상에서 잊혀져 버릴 책이 될수도 있는데, 어린아이들이 '압록강'에서 내가 느꼈는 즐거움과 감동을 공유했다고 하니 한참동안 흐믓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가을에 책한권 읽는다면 이런 책을 잃어야 하지 않을까.... 굶어도 배부르고 블러그 보다 재미있다. 꼭 읽어 보시라.
"계절의 순서는?” 누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봄은 어떤 아름다움을 가져다 주지?” 누나가 가르쳐준 문장을 나는 반복해서 외워야 했다. “산에는 꽃이 피고, 계곡에서는 뻐국새가 운다.” “그럼 여름은?” “들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담장엔 푸른 버를잎이 무성하다.” “가을은?” “들에는 바람이 속삭이고, 달은 고독한 뜰을 비친다.”
나는 자리에 누워 병풍 그림을 보는 걸 좋아했다. 병풍은 여덟 폭짜리였다. 산과 바위, 꽃과 시냇물, 다리, 그리고 기러기가 날아가는 해변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은 은은한 촛불 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났다. 그 중 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목동 그림이 내 마음을 끌었다. 그는 높다란 수양버들 옆을 지나, 멀리 언덕 위에 보일락말락 아슴푸레하게 숨겨져 있는 자기 짚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햇빛이 드리운 오솔길과, 그 길을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소가 좋았고, 마치 피리 소리가 귓전을 스치는 듯해서 저절로 흐뭇했고 끝없는 평화를 느꼈다. (책중에서) 2009/08/12
근주자적 근묵자흑(近朱自赤 近墨者黑)....
친구는 잘 사귀고 볼일이다. 한 십여년전에 전혜린 따라하기에 심취했던 감수성이 강한 어떤이가 ‘책좀 보냐?’면서 소개해 준 책이 ‘압록강은 흐른다’이다. “당연하지” 물론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은 아니고 강이니까 당연히 흐른다고 대답한것 같은데, 밥은 굶어도 책은 꼭 사서 잃으란다. 안그래도 가끔은 점심은 건너뛰고 살았는데 굶고 책 사읽으라니.... 나에겐 이중고이고 정말로 굶어가며 책을 사 읽을 때까지 그를 원망했다.
'압록강'을 사서 읽었을 때, 정말 숨이 멎는 듯 했다. 간결한 문체에 서정적인 아름다움… 눈앞에 바짝이 다가와 펼쳐지는 그 풍경, 눈물이 났다. 어찌 단순한 서술체로 이렇게 아름다움을 묘사할 수 있을까. 굶은 보람도 있고 그리고 또 몇 일 밥을 안먹어도 살 것 같았다. 그래서 십여년 동안 가끔 배고플 때 잃는 책이 되었다. 물론 주인공의 모습은 소심하고 우울한 전형적인 창백한 먹물이다. 그 먹물은 내가 지극히 싫어 하는 것이었는데 어쩌면 이 책속에 녹아있는 먹물이 나를 물들인 것인지도 모른다. 엇비슷한 소설속의 인물은 나에게 그만큼 커다란 영향을 주웠을 지도 모른다.
압록강은 3.1 운동이후에 독일로 망명한 이미륵에 의해 독일어로 쓰여진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이다. 1946년에 쓰여진 이 책은 출간 되었을 때 독일어로 쓰여진 가장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책이라고 호평을 받았고 독일의 중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 되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엔 10여년이 지난 후에 전혜린에 의해서 소개 되었다. 물론 나도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10년 전에 알게 되긴 했지만 아직도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얼마전 서점에서 한 아이가 이미륵에 대해서 말하길래, 이미륵이 누군지 아느냐고 물어봤더니 '압록강은 흐른다'와 '무던이'의 작가란다. 그래서 압록강을 잃어보았느냐 하자 교과서에 나온다고 한다. 조금 늦긴 했지만 이런책이 소개되어 아이들에게 잃힌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고 아름다운 마음을 갖는데 큰 도움이 될것이다. 요즘같이 베스트셀러에 가려 좋은책 고르기가 힘든 세상에서 잊혀져 버릴 책이 될수도 있는데, 어린아이들이 '압록강'에서 내가 느꼈는 즐거움과 감동을 공유했다고 하니 한참동안 흐믓했던 기억이 난다. 아마 가을에 책한권 읽는다면 이런 책을 잃어야 하지 않을까.... 굶어도 배부르고 블러그 보다 재미있다. 꼭 읽어 보시라.
"계절의 순서는?” 누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봄은 어떤 아름다움을 가져다 주지?” 누나가 가르쳐준 문장을 나는 반복해서 외워야 했다. “산에는 꽃이 피고, 계곡에서는 뻐국새가 운다.” “그럼 여름은?” “들에는 가랑비가 내리고, 담장엔 푸른 버를잎이 무성하다.” “가을은?” “들에는 바람이 속삭이고, 달은 고독한 뜰을 비친다.”
나는 자리에 누워 병풍 그림을 보는 걸 좋아했다. 병풍은 여덟 폭짜리였다. 산과 바위, 꽃과 시냇물, 다리, 그리고 기러기가 날아가는 해변이 그려져 있었다. 그림은 은은한 촛불 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났다. 그 중 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목동 그림이 내 마음을 끌었다. 그는 높다란 수양버들 옆을 지나, 멀리 언덕 위에 보일락말락 아슴푸레하게 숨겨져 있는 자기 짚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햇빛이 드리운 오솔길과, 그 길을 어슬렁어슬렁 걸어가는 소가 좋았고, 마치 피리 소리가 귓전을 스치는 듯해서 저절로 흐뭇했고 끝없는 평화를 느꼈다. (책중에서) 2009/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