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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ir

은교

영화 은교는 시인 이적요가 옷을 다 벗고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주위에서 노인이 몸이 좋네라는 말이 들려왔는데, 이 부분이 영화의 상징적인 장면일 겁니다. 아마 거울을 보면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과 다른 낯선 이미지에 놀라곤 합니다. 나는 훨씬 더 멋있는데 거울이 중국산이거나 후져서 왜곡된 거짓된 이미지를 만들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가상을 초월론적 가상이라고 하는데 이를 테면 영원한 사랑 같은 것입니다. 초월론적 가상은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합니다. 이를 규제적 이념이라고 합니다. 영화에서 은교는 그 초월론적 가상의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은교는 이적요의 시선에 포장되고, 타인에게 대상화됩니다. 이적요와 서지우, 그리고 은교 이들은 욕망을 매개로 서로에게 초월론적 가상이 됩니다. 이적요에게 초월론적 가상의 결과가 원고지에 쓴 은교였다면 서지우의 초월론적 가상의 결과는 표절이 됩니다. 은교의 초월론적 가상은 무었일까요? ‘외로워서 섹스한다는 말에 해답이 있습니다. 영화가 욕망을 다루고 있지만 한편으론 소외를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 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소외다. 그런데 소외는 단순히 인간 개인의 실존적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물질적 조건,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사회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적 생산의 문제이지만, 개인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문제 또한 중요하다. 사랑, 우정 등의 인간관계는 서로 다른 개인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출발한다. …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관계에서 스스로 주체가 되지 못하는 소외가 발생한다. 소외된 관계에 놓인 사람들은 사랑이건 우정이것, 진정한 켜뮤니케이션을 대체할 수 있는 상징물, 즉 물신=페티시를 찾아 추구하게 된다. 이것이 페티시즘(Fetishism)이다.

류동민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영화를 보기전에 류동민 교수의 <마르크스가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라는 책을 읽었는데 책이 이 영화를 상정해 두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들이 가진 물신은 자동차, 거울, 문학적 성취가 됩니다. 영화에서 은교가 문신 그리면서 이적요가 초월론적 가상에 빠진 장면과 너의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는 상이 아니다라는 대사는 소외에서 비롯된 페티시즘을 잘 보여줍니다. 그런 면에서 이 영화는 소외에 따른 욕망을 다루고 있습니다. 은교가 이적요와 대화하고, 이적요가 거울을 주워오는 장면에서 소통과 관심이 은교의 거울에 대한 물신성을 완화시키며 소외의 극복을 암시합니다. 또한 엄마가 물려준 거울과 공장에서 찍어낸 수많은 거울중의 하나라는 은교와 공돌이 작가의 대립은 소외에 따른 물신성과 그런 물신성을 극복해야 한다는 역설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적요의 젊음에 대한 욕망이나 작가의 문학적 성취에 대한 욕망은 은교를 또 다른 물신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은교를 매개로 이루어지는 욕망은 소외에서 비롯된 것이고, 이 소외의 본질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persona보다는 사회적 관계 통해 이루어 집니다. 이들의 소외의 극복에 대한 인정투쟁(Struggle for Recognition) 은 이적요와 은교가 시에 대해서 이야기 하거나 서지우의 표절, 그리고 서지우와 은교의 정사 등에서 보여주는데, 인정투쟁의 비대칭성 때문에 이들의 소외는 더욱 깊어 집니다. , 류동민의 책에서 말한 내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소외된다는 것과 그와 동시에 나 역시도 타인을 소외시킬 수 있다는 인정투쟁의 상호주의 원칙은 소외를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의 인정투쟁은 막장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으로 끝나고 소외는 심화되지만 소외의 해소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할아버지~ 은교 예쁘게 써줘서 고마워요

서로에 대한 관심과 대화가  물신의 완화를 보여주고 소외를 극복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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